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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1일 (일) - 어떤 양형 이유 (2) 본문

독서

2019년 8월 11일 (일) - 어떤 양형 이유 (2)

gentlecity 2019. 8. 11. 23:20

어떤 양형 이유 - 박주영 - 김영사 (2019. 5)

** 법원은 슬프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세상을 보니 온 세상이 울고 있었다.

p. 28 가정이 가정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가정은 공권력이 필요없는 사적 영역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폭력으로 누군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곳에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p. 49 친족 성범죄 - 타인의 몸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타인뿐이다.

p. 105 나의 존재는 타자에 의해서만 증명된다. 타자는 나를 설명함으로써 내 존재를 입증한다. 나 역시 나와 관계있는 타자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주석이다.

p. 107 소수자라고 특별히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법이 보호하기 때문에 보호받는 것이다. p. 116 법이 왜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냐고? 사실 이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잎이 없고 피부가 없으면 유기체가 죽고, 암흑물질이 없으면 우주가 존재하지 않듯, 다수가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소수자가 다수를 보호한다. 아니, 그저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갈 뿐이다. 

p. 149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잘 알려진 대사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이 말은 소년범을 대할 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한 아이가 망가지는 데도 온 집안과 마을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이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이들을 유기하고, 방치하고, 학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부모와 가족, 그 아이들 중 누군가와는 같은 마을 사람들인 우리도 함께 엄벌을 받아야 한다.

p. 196 판사는 햄릿형 인간이다. ..... 병역의 의무인가 양심적 병역거부인가, 자유인가 평등인가, 판결인가 조정인가, 법적 안정성인가 구체적 타당성인가.. 죽느냐 사느냐.. 이런 질문을 앞에 두고 흔들림이 없다면 과영 제정신이가?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의 지적처럼, 반증 가능성 없는 과학은 사이비이고 닫힌 사회가 곧 전체주의이듯, 화석화된 판사는 그 자체로 해악이다.

p. 218 선방일기 중에서.... 진실로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적이어야 할 뿐이다. 판사는 비정 속에 비정을 곱씹으면서도 끝내 비정을 낳지 않으려 몸서리친다. 

p. 220 내가 중심으로 살지 못한 것은 내가 소외되고 외진 곳에 서 있다는 그 마음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시선만 바꾸면, 전경과 배경은 서로 뒤바뀐다는 사실이 그제야 보였다. 나는 당신의 배경이고, 당신은 나의 배경이다.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면서 전경이다.

p. 253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정의와 힘은 동시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가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의가 되어야 한다. 정의는 시비의 대상이 되기 쉬우나, 힘은 시비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정의는 강해지기 힘들다. 결국 강한 것이 정의가 되었다. 파스칼의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리 우겨도 그건 그저 힘이지 정의가 아니다. 법감정은 단순히 격앙된 감정상태가 아니라, 힘이 약한 정의일 가능성이 높다. 들끓는 법감정은 곧 강해질 정의 아닐까?

p. 260 정의는 고정된 방위가 없고,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뚜렷한 실체없는 신기루이자 한마리 파랑새 같다. "사유의 내용은 의심할 수 있어도 사유한다는 사실과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테카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정의는 의심할 수 있지만 정의에 대한 열망을 품은 인간 그 자체는 결코 의심할 수 없다. 어쩌면 절대적으로 곧고 바른 유일한 것은 미덕이나 공동선이 아니라,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도 바르게 살려는 의지를 갖고 그 길을 끊임없이 고뇌하며 걸어가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그렇다면 정의는, 목표가 아니라 여정이고, 정의로운 삶을 살려는 열망을 품은 인간 그 자체다. 부정과 불의의 바윗덩이를 영원히 치우는 시시포스, 파랑새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묵묵히 길을 걷는 우리가 바로 정의다.

p. 274 어떤 절대자가 출발하는 빛에 입력한 것과 같은 그의 의지를 이루기 위해서든, 기적처럼 탄생한 유기화합물이 계속 존속하기 위해서든, 마지막까지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p. 278 어쩌면 판사도 그들처럼 뭍에서 유폐된 섬 같은 존재다. 항성 주위를 도는 행성 같기도 하다. 국민이라 불리는 태양 주위를 돌지만, 태양의 인력에 끌려가서도 궤도를 이탈해서도 안 되고, 딱 그만큼의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일정한 거리르 두고 꼿꼿이 홀로 서야만 하는 판사는 별이자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