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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6일 (화) - 아침루틴, 한국경제의 미래 본문

일상

2019년 11월 26일 (화) - 아침루틴, 한국경제의 미래

gentlecity 2019. 11. 26. 05:54

[아침루틴]

5시 반 기상을 하는데 밍기적거리다가 10분을 낭비한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스마트폰을 챙겨 아파트 단지로 나간다. NRC(Nike Run Club) 앱을 실행시키면 음악이 나오면서 러닝을 기록한다. 아파트단지와 교회주변을 약 3.5km를 뛴다. 1km를 4분 50초 정도의 스피드로 뛰는데, 아마추어 성인남자의 마라톤 기록이 대략 4시간 주파이니 1km당 속도로 계산하면 약 5분 40초정도이기 때문에 느린 속도는 아니다. 러닝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7층 집으로 올라가는데 매번 걸어서 올라갈지 엘레베이터를 탈지 망설이지만 결국 엘레베이터를 타고 만다. 집에 다시 들어가서 매트위에서 푸쉬업 15회 스쿼트 15회를 3세트 반복하고 샤워를 한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차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스마트폰으로 아리랑라디오 어플을 켜고 거치대에 올려놓은다음 국내 뉴스를 듣는다.

아침에 여유롭게 운동하고 식사까지 하면서 출근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근로시간 단축에 있다. 그 전까지는 잦은 야근과 밤샘으로 아침에는 주로 비몽사몽하곤 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여유있는 아침은 반대급부로 생산성의 저하를 가져온다. 일주일에 4건의 업무검토를 완료했다면 지금은 한 건을 끝내는 것조차 버겁다. 업무루틴이 깨지기 때문인데 매일 1시간씩 일주일을 하는 것과 하루만 일하는데 7시간을 일하는 것은 생산성이 다르다. 연달아서 업무를 하지 않으면 흐름이 끊기고 생산성이 저하된다. 긴 연휴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할 때 적응기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

운동시간이 확보되면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그만큼 내 수익은 하락한다. 과연 어느것이 옳은 것인가? 여유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집중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때 이런 고민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여유시간에도 생산성을 높이는 개인정비는 하지 않기때문에 현실적으로 예측할 때 '근로시간 단축'은 결국 높은 확률로 생산성을 저하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그 피해는 누가 안게 되는가?

[시장 코멘트]

밤새 미국 금리는 하락하고 주식은 랠리하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는데 미중무역 스몰딜 가능성이 높아지면 위험자산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지경제 지표가 나쁘게 나오면 금리 변동성이 확대 되는 모양이다. 주식은 기대감으로 움직이지만 채권은 실체를 보고 움직이기때문이다. 채권투자자에게 홍콩발 리스크와 아직 협상이 완료되지 않은 스몰딜은 불확실성에 불과하다. 금리가 다시 상승하려면 확실한 뉴스가 나와주어야 한다. 미중무역협상이 진전되는 것이 확실해질 때 금리는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한국 금리가 미국에 커플링되어 움직이기에는 지표가 우려스럽다. 금리 상승은 물가상승과 GDP상승에 의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에나 가능하다. 2018년 11월 금통위는 외화유출과 가계부채 우려로 금리를 올렸다가 시장금리는 오히려 하락하는 그러니까 중앙은행이 시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비판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외화유출에 대한 공포는 IMF때문인데 그 당시 미국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글로벌 핫머니가 국내에서 미국으로 급하게 빠져나가면서 순간적인 달러부족으로 유동성 위험에 빠진 것이 본질이다. 이후 여러국가와 통화스왑을 맺고 충분한 외환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 국내 투자가 된 자금들은 핫머니가 아니기 때문에 금리를 내린다고 외화유출이 급하게 이루어질 확률은 희박하다. 요즘 정부와 중앙금융기관은 기본적인 경제이론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개나소나 라는 말은 이럴 때 적절하다. 시장이 움직이는 본질과 매카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는 국민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기때문에 개나소나 말고 현장을 잘 알고 공격적이고 생산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다가오는 것은 레임덕일뿐, 그래서 나는 한국의 미래를 비관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이기때문에 누가 나에게 어떤 희망적인 스토리를 이야기해준다면 내 전망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주변에 없다. 어느 스토리를 만들어 내더라도 희망적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논리가 부족해진다. 현실을 제끼고 이상만을 추구할 때 이런 현상이 생긴다.